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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기

태항산 기행 1.

 

 


1. 출발. 10월 31일 밤.

 



현대문명은 관능적이다.


대낮 보다 밝은 조명과 하늘을 나는 엄청난 기계, 그것을 운용하는 거대한 조직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광경은 사람을 조그맣게 만들어 버린다. 고대인들이 꿈꾸던 천국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을까?

이제 생필품이 되어버린 비행기 여행은 '본격적인' 대중화가 시작되었다. '저가' 항공의 등장이 그것이다.

부자들의 전유물 일 때의 화려함과 과잉을 씻어버리고, 이동 수단이라는 본연으로 돌아가 비용을 절약하고,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 여행이라는

문명을 누리게 되었다.

 

단지...좀 '구겨넣어져' 짐짝같은 취급을 받는 느낌만 참아낼 수 있다면 말이다....그러나 한 세시간 정도는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비행기는 밤하늘을 건너 중국 땅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2. 정주(鄭州) 도착 11월1일 아침.

정주의 새벽...가난한 동네를 고층 빌딩이 둘러쌋다.


 

정주의 정자는 '정'씨족들의 성이란다.

그러므로 모든 鄭씨들은 이 고장이 고향인 것이다. '동주 열국시대' 부터 있어온 정나라는 꽤 오랜 역사를 가진 셈인데

('동주 시대'란 진시황이 통일하기 이전의 쟁패시대이므로, 거의 2천 수백년전 이다. 즉 동주의 분열상을 통일한 이가 바로 진시황이다...),

 

이곳 정주가 포함되는 황하강 '이남'의 넓은 평야는 소위 '중원'이라 불리웠다. 고대 중국역사는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쟁패였다.

방어가 어려운 평야지대라 무시로 외침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했다.

그러나 하남평원의 굉장한 생산력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이 고난의 땅에 사람을 끌어들이고, 생존케 하였다.

강이 날라다 주는 비옥한 토질과 풍부한 물과 인간의 의지가 합해지면서 오랜 문명이 존재할 수 있었다.

아침.....허름한 호텔 식당...그러나 알찬 식사
정주에서의 첫 식사는 괜찮았다.

닭인지? 돼지 족인지 모를 맛의 고기 혹은 젤라틴 한 점과 닭고기를 '닮은' 고기(?)와

누룽지 같은 맛의 삶은 곡물즙 즉 죽 한그릇과 '샹차이' 향이 많이나는 만두 하나와

마지막 '숭륭 맛'이 연상되는
구수한 차 한잔

식사 후 첫 일정 운대산 관람은 약간 고되었다.

수유봉

 

 

 


수유봉의 한자가 말려서 차로 먹는, 산에서 나는 '빨간 열매' 수유와 같다...

즉 봉오리가 산수유 처럼 '뽀족'하다는 말씀...

수유봉 정상까지의 버스는 스릴 만점이었다. 젊은 운전수는 교태로운 여자들의 비명소리에 위험한 산길을 과속으로 올랐다.

길은 굴곡이 심하고, 중간에 터널이 많았는데 터널 안에서의 270도 회전이 여러번이었고,

그때마다 여성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스릴 만점의 운행이다.

어둠 속에서의 급격한 버스 회전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그 광경을 촬영하려 했지만. 실패하여 많이 아쉬웠다.

수유봉에서의 계단 산행은 처음 맛 본 중국의 계단 산행이었다.

대단한 경험...그 높이, 그 경사, 그 치열한 인간의 공력, 그 치열한 삶에의 '열망' , 그 치열한 기도...

어찌 보면 지상에서의 천국은 엄청난 육체노동을 통해서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중국인들의 수제 노동이다.

3. 천계산(天界山) 산행 (2일 째)

 

정상 오르기전 정려석(情侶石 즉 부부바위다..한자를 못 읽으면 큰 바위만 찍는다..)

 

천계산은 이름 그대로 지상에 없는 별유도원이다.

다른 이름으로 회룡산(回龍山)이라고도 하는데,

룡(龍)은 산이므로, 즉  산들이 빙빙 돌아 회오리 지형을 만든다. 그래서 '회룡'이다. 관광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깡촌 중에서도 깡촌이었으리라...
이름대로 산은 빙빙 돌아 용이 서린듯 한데, 버스는 그 가파르고 꼬불거리는 산길을 달린다. 눈 아래로 아찔한 절벽이 낭자하게 펼쳐지고, 그 위를 버스는

아슬하게 달리는데, 마치 칼날 위나 실오라기 위를 달리는 듯하다.

그 회룡산 정상에는 상제를 모시는 사당이 있고, 여와여신과 복희씨의사당이 나란히 있다.

조금 아래에는 관음보살 사당을 배치하였다. 중국인들의 심성 깊이 들어있는 고유 사상에 대한 경사랄까...재미있는 부분이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에는 노인들과 여인들의 참배 행렬이 이어진다.

무수한 향불과 지전들이 태워지는 모습이 '서유기'에 나오는 장면과 같다.

정상의 상제궁


지전을 많이 공양했던 가난뱅이가 저승에서 당 태종 이 세민에게 돈을 꾸어 줬다는 이야기 말이다.
소설에 묘사된 '사후 세계'에 대한 이미지는 천 수백년을 이어 계속되고 있고, 변함이 없어 보인다.

가장 현실적인 민족이라는 중국인이 가장 비현실적인 저승 이야기에 저토록 몰두하다니..인간 존재의 신비다.

여기 회룡산 일대는 도교의 발상지이며 사당은 원시 천존이라는 도교의 시조를 모시는 곳이다. 사당에서 상제라고 모시는 이가 바로 이이다.

회룡산에서 '왕망령'엘 갔다가 하산하였는데 그 하산길이 또한 대단하였다.


 


왕망령(王莽岺)은 처음엔 그저 시시한듯 하였는데, 뜻밖에도 엄청난 풍경을 보여 주었다.

왕망의 역사적 사실은 사서에 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이 장소에서 왕망과 유수의 최후의 일전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유씨 황실의 재흥을 외치며 궐기하였던 유수는 형통이 모호한 자였고, 반면 왕망의 당당한 외척으로서 귀족이었다.

중국 역사의 황실 대부분이 '북쪽 오랑캐' 혈통이었고, 북쪽의 유목민 전통은 '모계제' 였으며, 정복 왕조라는 점 때문에 '연합' 정권의 성격이 강했던 한나라도

전한시대에는 외척의 힘이 왕실의 힘보다 강하였다.(즉 한나라의 성립은 강력한 외척가문의 뒷받침으로 가능했다...)

왕망의 등장은 이런 배경으로 가능했으며, 이곳 왕망령의 이야기도 그것과 관련있는 것인데...

천계산의 너무 찬란한 봉우리들과 절벽들로 눈이 이미 길들여져 봉우리와 절벽이 식상해 질 무렵...

 

왕망령의 '산화대'(散花臺) 전경은 압도적인 감동을 주었다.

 

산화대에서의 조망

산화대에서의 조망은 천계산군의 깊은 골짜기들과 높은 봉우리들이 한쪽으로 쭈욱 늘어있고, 그 전면에는 하남의 드넓은 평야가 펼처져 있었다.

마치 평원에서 물밀듯이 밀려드는 유수의 군진이 그 평야에 펼쳐져 있고,

산과 골짜기에는 최후의 항전을 위해 진을 펼쳐 버티고 있는 왕망의 군진인듯 하였다.

평야 지대는 자욱한 안개에 가려 무거운 장막인듯 이쪽을 압박하고 있었고, 일망무제의 그 평원은 압도적으로 넓었다.

그에 대항하는 산세 또한 강건하고 도도하여 굳건한 기상이다. 내려다 보이는 골짜기에는 골마다 군진의 연기인듯 구름 안개가 올라오고 있었다.

뉘엇한 해로 바람마저 차가워 고개를 움추리는데, 산화대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그대로 압도적이다.

 

왕망이 제아무리 재주있는 자인들 저렇게 중원 전체가 자신을 잡으러 몰려온다면 그걸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왕망의 회한이 이러했을까...그래서 이 고개가 그의 이름을 따지 않았겠는가...

역사서에서의 왕망은 형편없는 평가를 받지만 그도 또한 나라를 세운 위인이었으며(新나라) 초기에는 꽤 인기도 있었다는데..

사세가 불리해 지자 이 궁벽한 산골에까지 몰린 것이다. 왕이면서 그저 이름으로만 불리는 사내...왕망령에서 생각에 잠겼다.


곤산수도...동네사람이 파고, 그들이 통행료를 받는단다...

 

왕망령에서의 하산길은 곤산수도(昆山隧道)를 통하였는데 수십 킬로미터는 됨직한 바위 터널길이다. 사람 손으로 바위를 일일이 파내고 깨어내어 만든 길이다.

사람을 감탄케 하는 이 길은 이 지역의 인구 수나 경제나 전략적인 어떤 것으로도  좀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만큼 공력이 들었는데...

천길 낭떠러지의 절벽 상부로 부터 아래 방향으로...!!!
바윗속으로 길을 내었다.
말 그대로 바위를 '파내어'(隧道) 동굴 같은 길을 내었다. 인간의 공력이 대단하다.

이 공력은 인공(人功)이기도 하고 국공(國功)이기도 한데 

인공이란 장가촌 사내들이 힘을 합해 아랫 마을로 통하는 길을 내었다는 것이고,

 

국공이란 이것을 알아챈 정치가들이 정치 선전에 이 길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나라에서 높은 자들이 이 공력에 숟가락을 얹었다는 것이다. 이 불가능을 가능케한 한 사내를 크게 표창함으로써, 정치가들은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무상의 이익을 얻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여불위가 말한 '정치의 이익'이 아니겠는가.

하면된다 !!!

 

는 우리 땅에서도 한때 유행했던 '돌격 정신'을 함양하고, 인민을 복종시키고, 그들의 노동을 징발하는 그 거대한 중국 현대 정치의 한 면이 보이는 것이다.


현지인들이 '빵차'라 부르는 7인승 승합차에서 내려 산길을 걷는다. 걷다보니 이곳이 '만선산'(萬仙山)이란다.

봉우리와 절벽과 계곡들의 모양이 정말 신선이 사는 곳인듯...

 

어쩌면 '태항산계'라 부르는 이 산맥이야말로 중국의 등뼈이지 싶다.(우리의 태백산맥처럼)

북경으로부터 남쪽으로 하남성까지...중원이라 부르는 지역을 나눈다.

이 산의 서쪽은 '산서' 동쪽은 '산동'

이 지역을 흐르는 강인 '황하'를 기준으로 북은 '하북' 남은 하남...이 사성이 중원을 이루고 있고...

중국역사의 쟁투는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고, 왕조의 흥망이 무수히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하남의 평원이 무려 '30만' 제곱이라니...남한의 세배다. 일망무제의 평원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 땅과 그 인민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가 고대 중국역사의 '주제'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중국의 중심이 '양쯔'로 옮겨져 버리고, 이제는 가난한 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만선산에서의 하산길은 제법 길게 이어졌는데 다 내려오니 어둑하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맘에 든 산책길. 길은 만선산으로 이어졌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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