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南旅情 Ⅰ.
1.채소
먼나라로 여행하면 태양광선이 낯선 각도로 내리쬘 뿐 아니라 낯선 채소를 만나게 된다.
처음 보는 채소 뿐 아니라, 알더라도 잘 먹지 않던 채소가 온전히 다른 방식으로 요리되어 식탁에 오른다.
청경채 미나리 파 부추 마늘 고추 두부...
돼지고기가 오각향을 뒤집어쓰고 샤오롱빠(小龍包)에 들어있는데 그 기묘한 맛과 향기가 손에 까지 밴다.
미묘한 메슥거림...
파는 기름에 볶여있고 버섯들과 채소들...특히 ‘청채’라고만 불리는 미지의 채소가 식탁의 왕이다.
여기다 ‘반찬으로’ 땅콩을 먹게되고, 가지 볶음에는 튀긴 홍고추가 들어있다.
이 지방에서 많이 나는 각종 버섯에다 목이까지 죄 기름에 볶아져 나온다.
닭고기는 박하잎과 튀겨져 나온다.
‘라 바이구’ 라는 요리는 주재료가 소금에 절인 돼지 갈비다.
그걸 육수에다 끓이면서 채소 따위를 토렴해서 먹는데 그 맛도 참 미묘하다...
우선은 짠맛이 전면에 나서고...다음은 숙성된 고기의 부드럽지만 썩은 냄새..
국물의 기름 맛..국물을 떠먹을 엄두는 나지 않는다.
토렴으로 넣는 채소와 두부 우동가락... 채소는 시금치와 청경채와 부추뿌리 들이었다.
석림 앞의 이족식당에서는 일곱 가지의 채소 볶음과 안남미 밥을 먹었는데,
입 안에 밥과 채소가 섞이면서 묘한 볶음밥 맛이다.
까실하게 ‘된밥’을 기름을 많이 두르고 볶아낸 맛이다.
중국 음식은 내내 이 맛으로 기억된다. 기름진 볶음밥...!
모우평( 해발고도 3500미터 )에서의 만찬에는 평소의 기름진 채소 볶음에다(버섯들과 양배추, 배추, 청채, 감자...)
'한국식'의 소고기 장조림, 고추 장아찌, 마늘 장아찌, 깻잎 장아찌가
더해져 아주 먹을만 하였다.
이름하여 ‘산상’ 전라도 정식...반찬 가지수가 무려 11가지 였다.
채소들이 기름에 미끌거리며 속에서 돌아다닌다.
기묘한 향신료의 냄새가 코앞에 아른거리는데 무었을 조합하였는지 상상도 안된다.
향신을 쓰지않는 모국의 입 맛 탓이다.
2.우육면, 박하, 쌀국수
우육면, 박하
샤오롱포(小龍包) 에서도, 쌀국수에서도, 다른 다양한 채소 볶음,
돼지고기 볶음, 닭 볶음... 모두에서 나던 향이 바로 ‘박하’ 였다.
우육면은 우연히 사람이 많이 모인 길가 식당에서 먹게 되었는데,
현지 사림들의 아침 식사에 동참하겠다며 도전하였다가
최고 맛의 중국 국수를 만나게 되었다.
국수는 두가지 였는데, 생면과 익면..
생면은 따로 익혀주고, 익면은 덥혀서 주는데, 국물은 닭 육수였다.
국수에 닭 육수를 붓고, 그 위에 소고기 소스를 얹은 뒤,
따로 준비된 각종 향신료와 조미료를 각자 입맛대로 넣은 뒤...
마지막에 박하잎을 듬뿍 얹어 먹고 있었는데...
생 박하 잎이 뜨거운 육수에 반쯤 익어서 사각거리며 향긋한 냄새가
일품이었다. 쌀국수의 그 부드럽고 담백한 맛은 닭 육수의 풍부한 맛과 어울렸고,
조미료로 넣은 마늘, 고추, 파, 부추들은 각기 풍미를 더하였는데....
최고다!
특히 박하잎은 처음 먹어보는데도 어찌 그리 입맛에 맞는지!
가이드는 ‘치약 맛’이 날텐데요...하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맛이 썩 훌륭하게 어울렸다.
쌀국수
리장의 시골 장터에서 먹은 쌀국수는 그 소박하고 가난한 가게의 모습으로 참 멋있었다.
두어평 되는 가게에 탁자 서너개를 놓고하는 장사인데, 맛이 좋아 인근 주민들은 그 가게에서 만 먹는다고 했다.
주인장 겸 요리사는 아침부터 주문에 대기 바쁜데, 주방기구가 화구 다섯 개 짜리의 가스 버너 하나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벌써 동네 사람 몇은 국수를 기다리고 앉았고,
리장의 아침 기온은 쌀쌀하여 물도 한잔 안주는 가게 안은 썰렁하였다.
마침내 나온 리장 ‘제일’의 쌀국수.
쌀국수에 돼지 고기 소스를 얹은 모습이다.
잘 섞어서 한 입...
첫 맛은 역시 ‘짜다’였다. 그 다음은 부드럽고, 기름지고...중국 음식을 대할 때 마다 느끼는 기름진 맛...
국물은 너무 진해 마실 엄두도 나지 않는데...
말하자면, 아주 짠 소스에서 국수 가락을 건져 먹는 꼴이었다.
그 가난한 가게에서의 소박한 쌀국수 한그릇은 옛 생각을 많이 나게 하였다.
이 장사를 하여 자식을 키우고 공부시키고...맘 속으로 장사가 번창하기를 빌었다.
3. 차(茶)
운남은 보이차로 유명하다는데 특유의 맛과 차향 때문에
얼른 좋아하기 어렵다.(알다시피...거의 행주 짜놓은 맛과 향이다..처음엔)
대신 현지에서 만난 기막힌 차...
첫 모금에 맛이 싱싱하였고, 향기 또한 너무 강하지 않고 부드러웠다.
차 맛에도 ‘싱싱함’이 있다.
금방 만들어 아직 차밭의 바람 맛이 남아있고, 그 잎을 땃던 손길의 섬세함이 남아있고,
말리고 덖던 정성과 마지막 과정으로 완정한 잎만 골라내던 손맛이
아직 남아있는 ‘싱싱한’ 차 맛이 있는 것이다.
이 맛과는 달리 인간의 기교가 들어간 차 맛 또한 있는데
발효를 거친 것 들이다.
그들도 그 맛이 있긴 하지만 이 싱싱한 맛과는 맛의 기준이 완전히 다르다.
고급차라며 어마한 금액으로 팔리는 차들은 결국 ‘오래 된’ 아주 오래 된 즉 싱싱하지 않은 것 들이다.
오래 보존하여 두고두고 먹거나, 어디 먼 곳까지 가져가기 위해 만들어진 차인 것이다.
(운남의 유명한 차마고도는 곧 이 발효차들은 말잔등에 싣고 멀리 티벳까지 갔다가 소금을 싣고 돌아오는
캐러반들의 루트였다.)
그리하여 보존성이 좋아진 발효차들은 멀리 외국으로, 더멀리 서양에 까지 전해지게 되는데,
보이차니, 홍차니 하는 것들이 다 녹차를 발효하여 만든 차들인 것이다.
그 맛은 아무래도 싱싱한 맛과는 완전히 다른...즉 곰팡내 나고 묵은 내가 나게 되는 것이다.
그 맛의 차이는 회와 젓갈의 맛이 다른 것과 같다...
내가 반했던 그 차는 알아보니 현지인이 일상 마시는 ‘싸고 시시한’(가이드의 표현) 녹차다.
차밭에서 만들어지면 아침 마다 시장에 나오는 바로 그 차인 것이다.
먼지나 잡티 하나 없이 말쑥하게 차 가게의 진열장에 있다가
장삼이사 일반 중국인의 손에 팔려 아침마다, 때마다, 수시로, 사람들이 마시는 바로 그 차인 것이다.
아침 시장에 들러 차 가게에 가니 무뚝뚝한 상인은 알은 체도 않다가 가격을 말한다.
하품 한근에 25원, 중짜는 30원 상품은 35원...
상중하품의 구분은 잎이 얼마니 ‘완정한가?’ 또 ‘얼마나 신선한가?로 한다...
상품은 보기에도 좋은 모양으로 이파리들이 정연하고,
때깔이 곱고, 향긋하였다.
반면 오래된 차는 산화되어 색이 검고, 바스러져 부스러기가 많으며
맛 또한 쓰다.
나는 상품으로 무려 세근이나 산다
세근이면 ‘일 점 오 킬로’ 다.
세근을 세 몪으로 나눠 동생 한근, 친구들 한근, 집에 한근을 두고 먹을 것이다.
이 차는 두고두고 이 여행을 음미하게 할 것이다
일상적인 심상한 맛.
현지인이 일상다반사로 마시는 바로 그 차! 그 차보다 더 '여행적인' 차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시장 상인에게서 직접 저울에 달아서 그 가게에서 제일 좋은 놈으로 흡족히 삿으니 말이다
운남 리장 고성의 재래시장의 상등품 녹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