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놀기

대청봉 산행 1.

1.

 

전날 밤의 음주와 이틀에 걸친 수면부족으로 몸은 버스 좌석에 가라앉고 있었다.

좌석에 앉자마자 골아 떨어진 나는 버스가 경기도를 가로지르고, 강원도를 반쯤 통과한,

인제의 버스 정류장에 닿을 때 겨우 눈을 떳다.

 

강원도는 나에게 아픈 기억...일찌기 ‘노통’도 같은 아픈 기억을 이야기하였는데,

즉, ‘공화국 쫄병’ 으로서의 추억이 어린 곳이다.

그건 내가 현실적,심리적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재입대라는 ‘악몽’으로 나타나곤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수려한 산과 강을 가진 지역이며, 또한 그것 때문에 가장 삼엄한

군사적 대치가 있는 고장이 강원도다. 그 강원도에서의 쫄병 생활이 나에게는 무척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인제의 버스 정류장에서 본 오늘의 공화국 ‘쫄병’ 들의 모습은, 수십년 전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고, 새삼 개인의 삶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회나 국가, 역사의 힘을

생각하게 하였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저런 시대착오적인 국방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생을 구가할 날이 빨리 오기를...

 

숙취가 최고조에 달한 채로 백담사 입구에서 버스를 내렸다.

그곳에서 백담사까지 버스비 2000원!!!

부처님의 은택은 크고도 넓어 뭇 중생들을 이렇게 먹여 살리신다.

버스 하차 후 걷기 시작하였는데, 근육과 뼈들이 묵직한 느낌이다.

 

-------------

 

오랜만에 보는 수렴동 계곡의 맑은 물은 반갑다.

이전 몇 번 왔을 때는 가을날들이었다.

단풍이 황홀한 색감으로 빛나고, 물에 떨어져 잠긴 이파리들은 보석같은 영롱한 빛으로

계곡물을 아래에 가라앉아 있었는데,

계곡 물의 빛깔은...사람들이 보석을 좋아하는 바로 그 이유...순수한 빛..

그 보석같은 가을 단풍이 가진 순수한 빛이 맑은 계곡물에 잠겨 빛을 내고 있었다.

물에는 온통 붉고, 노란 단풍잎들이 가라 앉아 있었는데, 그 붉디붉은 색깔은 물에 엉기어굳은듯 하였다. 물이 바람에 살랑거리지 않는 순간에는 그대로 한 덩어리 붉은 보석인 것이다. 그 빛과 맑은 물빛과 물 위로 가지를 드리운 단풍잎들의 붉고 노란 황갈색과

가을 오후의 햇살이 빛의 향연을 보여 주었다.

수렴동 계곡을 거쳐 이어진 물들에서 나는 보석에서 볼 수 있는 순수한 빛들을 보았다.

그 선명한 기억.

오세암에 도착할 때 까지 땀을 조금 흘리니, 숙취가 땀으로 빠져나가 조금 가뿐해 졌다.

 

 

2.

 

봄이 들어서는 삼월이 되자마자, 산에 필 철쭉이 보고 싶었다.

봄산에 가면 노상 보는 꽃이긴 하지만, 올해 봄에는 동생과 함께 그 꽃을 보고 싶었다.

봄꽃이란게, 시작이기도 하고, 희망이기도 하고, 그런거 다 치우더라도 이쁘니,

한번도 같이 본 적이 없는 그 꽃들을 올 봄에는 그과 함께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산저산으로 가는 계획은 작은 암초들로 자꾸 미뤄지기만 하였고,

남쪽에서 시작된 철쭉의 북행이 어느덧 끝나갈 무렵인 오월 말 까지도

나는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계시처럼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금요일 밤이었다.

내일 당장 설악산으로 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나는 일로 복잡해지는 머리와, 자꾸 무뎌지는 감각이 걱정되기도 하여,

설악산의 높고 긴 능선과 그 곳의 바람이 간절하였다.

 

그와는 실로 이십년 만의 산행이다.

그때, 그는 날렵하였고, 아직 미혼이었다. 젊었던 우리 부부와 큰 아들과 그는

이인용 텐트 하나만 들고 지리산에 갔었다.

세석평전의 밤 ! 그때 키를 훌쩍 넘은 지리산의 철쭉들이 황홀한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밤새내린 비로 길은 질척거렸지만, 꽃은 정말로 이뻣었다.

 

얇은 텐트와 부실한 준비로 춥고 긴 밤을 소주와 노래로 지새웠던 그 이십년 전의 캠핑...

아직 새댁이던 마누라는, 그래도, 시동생이라고, 같이 맞장구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즐거워 했었다.

밤새도록 비가 내렸었다.

 

그때 예닐곱 살이던 큰 아이가 벌써 서른살이 되도록, 그간 사는 동안 그저 얼굴을 보면  반갑고, 사는 동안에는 그저 그렇게..

명절에 얼굴 한번 보며 웃는 걸로 만족하며 살아왔다.어찌 그리 무심하고, 바쁘고, 재미없는 시간들이었을까?

 

3.

 

봉정암에서 일박... 절 인심 야박하다며 속으로 욕을 했더니,

부처님께서 내 옆자리에 엄청 코를 고는 두 사람의 덩치를 보내주셔서,

거의 자지도 못하다가...거의 네시쯤에 피곤에 지쳐 기절하듯 잠들자 마자,

부지런한 중들이 다섯시 반부터 밥먹으라며 확성기에 대고 온 계곡에 방송을 한다.

 

절 인심 야박하다.

그래도 소박하게 옛 정취가 남아있는 ‘오세암’과는 달리,

봉정암은 장사 잘되는 속세의 영업집 같은 분위기다.

 

절 음식인 만큼. 간만 간단히 된 미역국에 밥 한술이 좋다.

 

그러나, 사람을 땡볕에 앉아서 밥 먹게 하는 건 어떤 대접인가?

그리고 모든 행주좌와어묵동정에 ‘스님용’ 과 참배객용이 구분되어 있다.

이게 어느 부처님 법이던가?

 

부처님 법은 불경에 씌어 있으니, 부처님 재세시절 그분의 행적을 들여다 볼 일이다.

그분은 몸소 맨발로 흙길을 걸어 걸식동냥하였으며, 스스로 제자들과 같은 자리에서 먹었으며, 발우를 자신이 씻고, 몸소 발을 씻고, 자리를 정리한 뒤에라야

설법을 하시지 않았던가... 이제 수천년이 지난 후 제자들은 상좌에 앉아 영화를 누리고, 천리 먼길을 마다않고 부처님의 자취를 찾으려는 참배객은

그저 지나가는 객손으로만 대접하고 있다.

 

실상, 요즘 절집의 행태가 부처님의 법과 멀어도 한참 먼저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미신처럼 영험이 소문나기만 하면, 무한의 욕심으로 그 멀고 험하고 높은 설악산 꼭대기까지 쌀이며 미역이며 김치(이건 불법(부처님법)위반이다...

그러나...중들이 요구하여 은밀히 가져들 가고 있다는 소문이다)를 져나르고, 여나르는..

이 땅의 순박한 신심들이, 한적했던 암자를 저리도 크게 만들었는데 ,그러면, 그 기적은 마땅히 부산 아지매들, 아니, 이 땅의 모든 아지매들, 엄마들의 원력의 덕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 원력을 일으킨 부처님의 가없는 공덕일진데...

 

이제 커져버린 봉정암은 스스로 어른이 되어, 화장실이든, 취사장이든, 목욕탕이든..

중용 따로, 참배객용 따로 쓰게된 것이다.

절 인심 고약타..

 

4.

봉정암의 불편한 밤

 

그렇다. 우리가 ‘산사’라는 말에서 상상하는 고요하고 고즈넉한 밤이란 봉정암에서는 없었다.

세속의 많은 욕심들이 산 위로 올라와 밤새도록 기도한다며, 푸닥거리같은 주문을 외고, 목탁을 두드리는 소란이 밤새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무시로, 시간이나 공간에는 아예 신경쓰지 않고, 중들은 필요할 때 마다 커다란 확성기 소리로 짖어대고 있었다.

봉정암의 밤은 밤의 고요도 없고, 시원한 바람도, 맑은 별빛도 보이지 않았다(달무리가 잔뜩 끼었었는데.. 이게 다음날 많은 비를 예고하고 있었다...)

이 깊은 산중에 까지 도달한 속세의 소원들이...부처도, 아니, 사리탑 내에 안장되어 ‘있다는’ 부처의 뼈다귀도 송연스러울 것 만 같다.

이렇게 하여 무슨 소원이 이루어질까...?

소원이란게 죄다 남을 이기도록 해달라는 것들이었고, 돈 잘 벌어 ‘잘 살게’ 해달라는 것이었으니, 출가자인 부처가 그 소원을 어떻게 들어줄 것인가?

그는 그런 속세를 버리고 해탈의 길을 가라고 가르쳤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의 종교라는 현상이 다들 이리 해왔으니, 오히려 세속의 욕심을 버리라는부처님의 말씀은 저들에겐 들리지 않을 것이며,

그가 그저 ‘방편으로’ 보여준 여러 가지 신통력이나 기적 만 남아, 부처님의 그토록 간절하게 ‘버리기’를 권면하였던 세속의 욕망을 이루는데

그의 위신력을 빌고자 하는 중생들의 요구들만이 절 집을 시끄럽게 하는 것이다.

 

잠시만이라도, 절집에 조용히 앉아 그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마음을 좀 가라앉히며,

그의 위대한 교설을 묵상하는 중생이 이리도 귀한 것이다.

 

봉정암은 부산 아지매들이 세웠다는 속설이 있는데, 부산 아지매들로 ‘대표되는’ 생활력 질기고, 생명력 강인한 바닷가 아줌마들이 그 힘들이,

조금이라도 영험하다는 소문이 난 산중 기도처나 약사불에 친견다니며, 건강과 소원성취를 빌고, 이 험난한 세상 조금이라도

아프지 않고 살게 해달라고 빌며, 희사물로 쌀이며 소금, 김치를 머리에 이고 어깨에 져나르는 일이 수십년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커다란 가람과 웅장한 건물로 나타나고, 다시,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의 사람이 언제라도 와서 먹고 마시고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거야 말로 ‘자라나는 빵’, 이어오병의 기적이 날마다 일어나는 것 아닌가. 그것이야말로 기적의 근원일 것이다.

 

그러나, 그 원력으로 커나간 절집들은, 가난했던 시절, 신도들이 몰래 갖다주는 김치 한조각을 고마워하던 시절의 맘을 이제는 잊어버리고,

또한, 그 시절 어려운 중에서나마 멀리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찬 물 한그릇이라도 따듯하게 대접했던 스님들은 이미 죽거나, 떠나고 없어서..

풍족한 절간에서 당연한듯 중질하는 중들만 남아, 아지매의 원력도, 부처님의 공덕도, 그의 가피도 모두 돈으로 환원되어,

아래에서부터 이고지던 쌀 푸대는 이제 산뜻한 비닐 포장에 담겨, 절간 매점에서 팔려, 부처에 공양된 후, 다시 매점에 진열되어 되팔리고 있다.

머리에 한 장씩 이고 지고 나르던 기와조각도, 이제는 금칠이 되어 번쩍거리며 매점에서 팔리고 있는데,

저 도금기와는 어느 전각에 언제 올라갈 것인가..?

 

노작가가 오래된 농담에 대한 책에서 ‘주책없는 물질욕’ 이라는 말을 하였는데,

가장 신성하고 신실한 심성의 사람들이 모시는 부처의 집이 어찌 이리도 주책없는 물욕으로 칠갑을 하고 있는가..

마땅히 스님이라면, 그 욕망의 바다를 갈파하고, 그 욕망의 헛됨을 깨우쳐 주어

미망의 이 언덕에서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인도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이미 성공하고 부유한 세속인, 범부의 표정만..

부처의 가르침은 간데없고 푸닥거리 같은 진언만 난무하니...

 

 

'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항산 기행 1.  (0) 2015.11.09
雲南旅情 3.  (0) 2015.01.04
雲南旅情 2 .  (0) 2014.12.20
운남 려정   (0) 2014.12.17
대청봉 산행 2.  (0) 2013.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