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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기

雲南旅情 2 .

 

1. 머나먼 그곳 구름의 남쪽

 

역사가 중국에서도 운남지방은 제갈량 이야기에 오니 제법 역사가 있다.

그러나, 명나라 말에야 겨우 정식 지방관청이 생겼고, 그 후로도, 실질적 지배자는 지방 호족들이었으며,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는 지방 유력자들간의 분쟁이나 조정하는 정도였다니, 운남 지방은 중원으로부터 멀고 먼...

 

구름의 남쪽 외진 벽지였던게 틀림없다.

 

그리하여, 이 지역은 소수민족의 전통이 많이 남게 되었고, 중원으로부터 전쟁과 적을 피해 도망쳐 온 난민들이 오랫동안 살아오게 되었다.

히말라야 산맥의 끝자락을 이루는 이 지역의 고산은 자연적인 방벽도 되어 주었을 것이다.

 

부산에서 그곳으로 오가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부산-홍콩-곤명까지는 비행기로 거의 8시간 이상,

곤명 으로부터 목적지 리장까지는 다시 밤 열차로 9시간,

리장으로 부터 옥룡설산, 나시족 마을, 호도협 까지 다시 버스로 3~4시간...

 

마침 이른 추위가 몰아닥쳤던 부산을 떠나, 땀이 날 정도로 후끈하였던 홍콩을 거쳐 곤명에 도착하였다.

 

2. 춘성

 

운남은 멀고도 멀었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도착한 곤명은, 상춘의 고장...년평균 기온이 20도 정도라는...춘성이었다.

 

개발도상에 있는 나라 특유의 먼지와 소음이 이 벽지에 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전역이 공사판이 되었는데, 개발이 완료된 동해안으로부터 서서히 내륙으로 공사 먼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동양삼국의 근대화 과정이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진행되는데,

거대 도시를 개발하고, 그것을 거점으로 선을 잇고, 그 선의 안밖으로 면을 이룬어 개발한다는 전략...

 

중국은 고대로부터 이어진 거대 도시들이 있었으니, 개발 지점을 선정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수천년을 이어온 과거 문명을 쓸어버리며, 보호구역을 만들어 성벽으로 에워싸고

(그러므로, 중국의 고적들과 역사와 유적지들과 소수 민족들과 소수 의견들은 미 대륙의 인디언과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

나머지는 다 부셔서 콘크리드 빌딩과 아스팔드를 입히고 있다.

 

도시화에 대해 생각해 보면, 도시화는...'급작스러운' 도시화는 주변과 도시의 구분을 뚜렸이 하여,

도농간의 격차를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고, 그 차이에 대한 사람들의 수긍을 통해...

 

즉 발전되고 세련된 도시와 낙후하고 꾀죄죄한 시골의 너무나 선명한 대조와, 어느 것이 더 좋은가에 대한 선택을 통해...

 

도시로 도시로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것을 동력으로 다시 도시가 더욱 커지는...발전경로를 겪는다.

이건 동양 삼국의 공통적 경험이다.

 

이런 도시화 전략은, 국가 경영자들에겐 가장 값싸고 빠르게 근대화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며, 정치적 선전에도 가장 유리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날로 뚜렸해지는 사회적 격차와 신 귀족의 등장이다. 도시화의 혜택을 받는 구 권력층이나 그 측근 혹은 정치꾼 일부는

개발이익의 대부분을 독점하며 신 귀족층이 되고, 조국 근대화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량한 도시에

혹은 수탈당한 농촌에 남겨지는 것이다.(중국이라면, 농촌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도시를 위한 수탈이 진행될 것이다. 워낙 크니...오래도록...)

 

그 넓은 중국 땅을 다 놔두고 하필 저렇게 좁은 도시에 고층 아파트를 많이 만들어야만 하는 이유에,

조국 근대화라는 정치적 슬로건의 비밀이 숨어있다.

 

운남성의 성도 곤명에도 타워 크래인이 우뚝 서서 고층 아파트며 사무실들을 짓기에 여념이 없다.

 

3. 꽃, 나무

 

부겐베리아가 보랏빛 꽃을 피우고 있었다.

세장의 꽃잎이 모여 꽃을 이루는 부겐베리아는 운남성의 성화라고 하는데, 단아한 중국 미녀 같은 꽃이다.

 

 

나무들은 '11월' 이라는 시간에 맞게(한반도를 기준으로)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는 은행나무, 플라타너스도 있고,

아직 푸르싱싱한 잎을 달고 서있는 장나무, 녹나무과의 나무들도 있고,

심지어 한창 여름인듯 꽃을 피워 올리는 것들이 같이 서있다.

나무들은 제각기, 제 개성대로, 춘성의 기후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지방은 고도 차이가 심한 편이라, 고도에 따른 식물의 변화상도 볼 수 있었는데,

1900미터 고도의 곤명, 2400 미터대의 리장, 거의 3000 미터에 달하는 옥룡설산 기슭,

그리고, 초목 한계선을 뚜렸히 보여주는 옥룡설산의 고봉들과, 그 위의 만년설들을 한지역에서 모두 볼 수 있다.

 

4. 나시족, 신화

 

모우평 오르는 케이블카 역의 한켠, 주차장 입구에 방치된 목상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낡은 목상이다.

 

 

 

하부는 뱀인, 여신상이다.(인면사신의 신은 나시족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농경민족에 나타나는 신의 형상이다. 뱀은 시간과 인간의 영원회귀나 재생을,

여성은 생육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의 본성을 나타낸다.)

 

이곳의 주 인종인 나시족들은 아직 모계사회의 전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데, 신상은, 여신이 지배적 신이던 과거로 부터...지금까지 이어지는 이 지역의 주신일 것이다.

산신령하면, 수염이 허연 할배를 생각하는 우리나, 심지어 창조주로 다시 수염 허연 할배를 상상하는 로마족의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사실은 여신이 지배하던 시간이 더욱 길었다는게 인류학의 설명인데, 남성 원리에 억압받던 모성적 문명이, 디지털 혁명과 함께 재래하고 있으니...

 

영화 '붉은 수수밭'의 감독인 장이모우는 각 지역 마다 민족극을 연출한 것으로 이름이 높은데, 리장에서도

'인상 리장'( 印象麗江 )

이라는 민족극을 공연하고 있다.(이 극의 주인공은  이 지역의 주 민족인 나시족, 장족, 백족, 묘족, 대리족 들이다.

이 극을 통해 장이모우 감독은 우리 표현의 '어용' 감독임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해 보였다)

 

나시족 젊은 남녀 수백명이 동원되는 공연은 내용이 퍽이나 애상적이고, 민족적이다.

공연의 말미에 강조되는 '우리는 하나, 우리는 모두 중화민족' 이라는 멘트하며,

관객을 모두 일으켜 세워 외치는 '우리는 하나' 의 구호는 생경하면서도, 중국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여주었다.

이 정치적 색채를 제외하고 보면,

 

 

 

 

공연은 잘 만들어졌는데, 우선은 무대다.

무대는 관람석으로 부터 멀리 떨어져, 높이 지어졌는데, 무대 너머로, 옥룡설산의 장대한 봉우리가 무대의 일부인냥 보였다....

금정은 연극이 아니라, 사실, 그 무대에 감탄하고 반했다. 그리하여,무대에 등장하는 무희들은 거대한 무대의 꼭두각시 인형처럼 보였는데,

그 용모는 파악하기 힘들었고..그야말로 '인상'이었다. 장이모우는 실제 공연으로 영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또 금정은 한 장면에서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대사를 거의 못 알아듣는 공연에서, 단지 장면만 보고, 상상으로 '해석된' 감정에 눈물이 복바치다니...

이게 장이모우의 예술의 힘이었던가? 아니면, 운남여정의 위력이었던가...

 

그 장면에서는 하늘의 태양이 따갑게 비치고 있었고, 산 너머 멀리로 끌려가는 한 여자(공주?)는 제 어미와의 애끓는 이별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 장면에서 문득 '화양연화, 호우시절' 이란 구절이 떠올랐는데...내 인생의 한 절정도 이 순간에 가고 있다는 감상과...자막에 나타난 결정적인 글귀 하나...

....

白鶴一去不復返

....

 

당나라 시인 최호의 싯구를 패러디한 이 구절을 보는 순간, 나의 한 순간이 지나고 있다는 확연한 느낌과 함께...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눈물에 흔들렸다.

무대에서는 공주가 말잔등에 올라 설산을 넘고 있었다. 천년전 그녀의 젊음이 설산 너머로 사라지고 전설로 남은 그 순간이 나의 순간과 겹치고 있었다.

그건 아마 운남 여정의 과장된 감성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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