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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기

대청봉 산행 2.

1.

 

대청봉으로 향하는 길은 초입부터 가파르게 이어진다.

(몇 년 전에 와 본 기억으로는, 이렇게 가파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그때만 해도 힘이 좋았나 보다. 기억에 남은 이 길은 그냥 쉽게 올랐던 길이니 말이다.)

체력이 약해진 동생은 보폭이 작고, 걸은은 느렸다. 그의 뒤를 조심스레 따라간다.

그가 혹시 힘들어 하면 당장이라도 돌아서서 내려가야 한다. 그는 아직 무리하면

않되는 것이다.

대청봉으로 가는 가파른 산길을 그와 함께 걸으니, 그의 쓰디 쓰지만, 달콤한 인생이

눈에 어렸다.

어려웠던 초년시절을 그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기적처럼 그에게 나타난 그의 아내와 아들 딸들...

제수씨가 그 살뜰한 솜씨로 꾸며놓은 그의 살림집은 그대로 보석같이 반짝였다.

그의 곁을 지켜주는 그녀의 손길로, 아이들과 그 집과 살림들은 윤택하였다.

그건, 돈 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것이다.

한참 재미있을 시절에 운명처럼 그에게 다가온 무서운 병!!!!!

어머니와 나는 그의 고난에 찬 인생에 대해 한탄 하였다.

어머니는 오로지 그의 회복을 기원하였다. 요즈음에도 어머니는 새벽마다 정한수 한그릇을 떠놓으신다.

그의 존경스런 인생을 조금은 아는 나는, 형이라고, 나와 함께 산에 가는 걸 이렇게 좋아라하는 그를 보며 마음에 벅차 올랐다.

비가 질척거리니, 년 전에 그와 함께 한 제주도 일주의 기억이 떠오른다.

제주도를 자전거로 일주할 그때만 해도, 둘 다 건강하였고, 나는, 나이게 걸맞지 않게

형제간에 흔히있는, ‘경쟁심’이 발동하여, 동생을 자전거로 따돌리고는 하였다. 그때 그는 무릎이 않좋아서 고전하고 있었는데(이건 나중에 알게된 것이다...) 나는 동생을 마구 몰아부쳤었다...형이라는 자가...

그러나 그때는 둘 다 무언가 미래에 대한 희망에, 무모한 계획의 무모성에 대한 무지로 인해, 무엇보다도 몸의 건강에서 오는 쾌락에 즐거웠고 아무 걱정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때 비가 참 많이 왔었다...

이런 기억마저 아프게 떠올라, 이번 산행에서는 그를 앞세우고, 그의 보조에 맞추어,

‘형답게’ 동생을 보호하며 산행을 하고자 하였다. 그의 보조는 느렸으며, 답답하였고,

기운이 없어 안타까웠다. 그는 아직 병 중이며, 거의 완치라고 하여도, 아직은 회복 중이며,

예전의 기력을 완전히 찾지는 못했으니, 사실 이번의 긴 산행도 그가 지칠까 조금은

걱정이다.

 

 

2.

 

이맘 때 쯤 피어 있으리라 기대한 철쭉은 영 보이지 않는다.

남쪽부터 쳐올라온 철쭉이 이제 이 북쪽의 산에도 피기 시작할 계절인데 말이다.

이번 산행은 설악산 철쭉을 보자고 온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철쭉이

영 보이지 않는다. 설악산에는 철쭉이 없나..?

소청 대피소에 서니, 예전 지나 보았던 공룡능선이 준엄한 자태로 서있다.

언제 보아도 늠늠한 산세, 그 웅장한 침봉들....저절로 예전 산의 명인들 이야기가 나온다..조지 말로리, 헤르만 불, 라인홀쯔 메스너...(물론, 우리의 산행이 그들과 비교되는 건 아니다...)

중청을 지나는 길다란 계단곁에 보랏빛으로 피어 촘촘히 안개에 젖어있는 작은 철쭉들이

보인다. 바람이 강하고, 기온이 낮은 고지대라, 철쭉들이 키가 작고, 꽃도 작다.

그러나, 작아서 더욱 영롱해 보인다. 중청의 오른쪽 기슭을 덮고 있는 보랏빛 철쭉들이

내리는 비에 젖어 있다.

오랜만에 오른 대청봉은 가스로 전망이 없었다. 비가 내렸고, 다행히 바람은 불지 않았다.

잔뜩 낀 구름에서는 빗방울이 듣기 시작하였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암봉 몇 개를 빼고는...볼게 없었다.

그러나, 대청봉 꼭대기에 도달했다는 것 만으로도 좋았다.

 

오색으로 하산

 

오색으로 하산하는 길은 예상대로, 아니 예상보더 더욱 가팔랐다.

전체 4킬로미터에 이르는 하산 구간 중 겨우 4개의 오르막 만 있었다(하도 가팔라 세어 보았다) 그것도 한개가 조금 긴 정도이고 나머지는 불과 10 미터도 안되는 오르막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구간 돌계단들은 마구 헝클어져 오히려 없는 것만 못하였는데,

마지막 1킬로 이하의 길은 힘도 빠진데다, 배도 고파지고,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한 비로 인하여 퍽 어려웠다.

 

이 하산길에서 두번이나 미끌어졌는데, 짚고있었던 스틱 덕분에 크게 넘어지지는 않았다.

 

언젠가 이 길로 한번 '올라보자'는 오기 마저 생겼는데, 진짜 치열한 산행이 될 것이다.

거의 네시간에 걸치는 오르막!!! 동생과 이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일주일간 계속된다는 오르막이 생각났다.

가을에..가능하면 올가을에 가고싶은 '안나푸르나'의 그 길 말이다...일주일간의 긴 오르막에 이어지는 일주일간 의 긴 내리막....세상에는 더욱 큰 것도 많으리라...

 

오색을 계곡을 다 내려왔을 때는 비가 본격적으로 퍼붓기 시작하였다. 초라한 생쥐 꼴이 되어 찾아든 오색의 어느 온천...

온천물이 좋았다.

 

3.

 

이번 산행은 내게 향기로 남았다.

 

버스를 내리자마자 공기 중에 있었던 봄 꽃의 향기..어느 나무인지 확인할 수 없어 더욱 깊고 신비로웠던 그 향기..

비 때문에 입었던 윗 옷 사이로 풍겼던 땀냄세.

하산 후 식당에서 만났던 도토리 묵. 그 묵을 무쳤던 진정 향기로운 참기름의 향기. 그 향기야 말로 설악산의 어떤 요정인듯 하였다. 그 황홀한 미끌거림이라니...

기대했던 산나물 비빔밥에는 오히려 나물 내음이 없었다.

취나물, 도라지 나물, 더덕 조각들, 고사리 등속이 들어있었던 비빔밥에는 고추장이 너무 들어가 텁텁하고 짤 뿐 아무런 향취가 없었다.

차라리, 도토리 묵으로 만족하고 말았어라....

 

참기름...

 

세속으로 돌아왔다는 한 증표.

겨우 이틀간의 절밥이었을 뿐인데, 참기름이 이렇게 황홀하다니. 인간의 감각이란 진정 예민하고 간사하다.

 

결국 설악산의 향기, 봄들은 산 위에 남고, 나는 다시 매연 가득한 도시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하여, 향기의 잔해가 아직도 내게 남았다...

 

병중에도, 건강한 산행을 성공한 동생의 작은 승리를 축하하며...그 작은 승리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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