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4대 기서 중 하나인 금병매가 '올제'에서 완역되어 나와, 기쁜 맘으로 읽었다.
난잡한 남여상열지소설이지만, 당대의 사회상이나 시정인심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에 대한 편견은 그저 성애소설일거라는 것인데, 일견 본 바로는, 그렇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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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의 약 오분지일 정도는 등장인물의 복장과 그들이 하는 인사수작에 대한 묘사다.
그 묘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당시 부자로 살던 사람들과 그들 주위의 평민들의 복색과 풍속을 알 수 있다.
특히, 복장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옷감은 주로 비단인데, 그 종류가 수십이며, 채색이 또한 수십종이며, 무늬 또한 수십이며,
어떤 모습으로 마름하여 바느질했는가에 따라 또 달라지니, 당시의 호화스럽기 짝이 없었던 생활상이 잘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질탕하게 즐기는 파티에 등장하는 음식은 현대의 어떤 부페에서도 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책상다리 빼고는 다 요리해서 먹는다는 중국의 요리의 진수가 드러난다.
물론, 상상속에서 맛 볼 뿐이지만 말이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술 또한 종류가 수도 없이 나온다.
주인공인 서문경과 그를 잇는 탕아 진경제는 남자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물론 이들은 남성의 욕망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들 남성의 욕망은
그저 나비가 무수히 핀 꽃들 사이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본능적인' 행위에 불과하고,
사실 욕망의 본질은 여성의 그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가 든다.
책의 제목인 금병매는 반금련의 금, 이병아의 병, 방춘매의 매를 합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즉 주인공 여자 3명의 이름이 이 책의 제목인 것이다. 이건 왜 일까?
그들 여자는 서문경과 어울어져 욕망을 즐기다가
기어코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일견, 그 여자들은 자신의 악행에 따른 징벌을 받는 것 처럼 보이지만(권선징악 같은 단순하고, 무지막지한 운명이 아니라),
사실은 불교적 인과응보라는 보다 복잡하고 미묘한 운명의 파도를 넘은듯 보였다.
(인과설에 의하면, 선-악의 원인은 선-악의 결말과 반드시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며,
인연에 따라서는, 악인이 선과를 맺기도 한다는 것인데...
이런 생각은 인생의 복잡미묘함을 소설에 반영할 수 있게 한다. 권선징악이라면, 소설이 길 필요도 없고, 재미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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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인생을 요약하는 말 한마디가 있는데, 그건 음식남녀라는 말이다.
飮食男女 인 것이다.
즉 중국인의 현실적 인생관은 바로 이 말 한마디로 요약되며, 그 이상은 없다는 것이다.
마시고, 먹고, 남녀간의 인사 수작 혹은 얽힘으로...
인간의 전 인생이 만들어지고 영위된다는 사상이다(음식남녀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정말 잘 만든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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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읽을 수 있었던 이 소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후에 읽어야 하는 것이라는 감상이다.
젊은 시절에야, 더구나 하드코어 포르노가 범람하는 지금에야,
남녀 관계에 대한 신비가 어느정도 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 경험이나 상상이 너무나 강렬하여,
마치 짧기만한 서문경의 화양연화 처럼, 인생을 황폐히 하고, 기력을 소진시키며, 무엇보다 중요한 시간을 낭비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이들이 기대하듯 이 소설에서 섹스의 이야기를 읽을 수도 있으나,
저 찬란했던 1천년 전 송나라 말기 휘종 시절의 산동반도 남부의 갑부 서문경의 물질 생활을 읽을 수도 있으리라.
그것은 너무나 찬란하였고, 그들의 허무한 결말을 구원했던 당시 사람들의 종교적 염원,
중국적 문화의 힘, 소설의 위대함....이 소설을 세세히 이야기하려면, 2천 5백 페이지가 넘은 완역본을 두세개 더 해야 하리라...
진정 중국은 인류 문명의 보물 창고다.
이 모든 것이 모인 4대 기서 중 제일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