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혹은 묘사라고 부르는 집안의 가을 행사가 있어 참여하였다.
고향 시사는 전에 한번 참석했다 끝나고 오는 길에 페차할 정도의 교툥사고가 나서
한동안 가지 못하였는데, 그게 어느덧 십 오년이 지나 버렸다.
예전, 이른바 전통양속이 많이 남아 있었던 어린 시절
당시 어른들에게 시사는 매우 중요한 년중 행사였으며, 어버지는 어린 나를 데리고 고향 마을 시사에 참여하였더랬다.
그때는 장례도 상여를 반드시 메었고, 집안 간에도 왕래가 잦아 친척들 끼리 만나면
떠들썩 제법 축제의 맛이 났던 것 같다. 어린 나도 당연히, 오랫만에 동갑네 친척을 만나 논다고 신이 났었고...
세월이 어떻게나 빨리 가는지, 풍습이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 또한 어찌나 빠른지
지금 우리 사는 모습은 당시와는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이 된 듯하다.
당시 어른들은 죄다 조상신이 되어 이 땅을 떠나 버렸고,
당시의 풍습을 뒤받치던 사회 경제구조도 이미 엄청 변해버려 이제 농촌에는 노인들만 남았고,
이번 시사에도 그저 노인들 몇몇이 모여서 전례문제로 옥신각신 다투며 조상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
전례 문제란, 정식으로 축을 읽고 복배를 하느냐 혹은 축을 읽지 않고(무축) 단배로 하느냐의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정식 제사 때에는 축을 읽고 복배를 하고,
차례에서는 무축 단배를 하는 것인데, 시사는 일종의 정식 제사이니 정식으로 축을 읽고 복배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20대 할배까지 모두 챙겨서 한자리에 제사를 지내기로 약정을 하는바람에
(전에는 선산에 음식을 싸들고 가서, 일일이 조상네들 묘소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사람들이 많이 선산에 몰려 다녔고, 시간이 엄청 걸렸고, 제사 음식도 많이 준비해야 했다...
선산이 하얀 두루마기 차림의 어른들로 온통 하얗게 덮었었다...
세월이 지나고, 이제 선산을 돌아다니지 말고, 제실에 모여 합동으로 제사하기로 했으니 이만해도 많이 간략해진 것이다...),
축을 읽는 사람이나 헌주를 하는 사람 혹은 절을 하는 자들의 일이
엄청 많고 분주해지고 복잡해진 것이다. 그리하여, 같은 대에 속한 조상들에게는 한꺼번에 축을 올리고 한꺼번에 절을 하자는 소장파의 주장과
제사에는 그런 법이 없으니 일일이 다 챙겨해야 한다는 노장파 간에 말다툼이 일었던 것이다.
실컨 고생하던 젊은 축들은 삐져서 제사를 지내다 말고 '나 안해 삼촌이 해 보슈' 하며 물러나자,
삼촌네들은 한편 당황하기도 하고, 한편 젊은 축을 구슬리기도 하며,
그냥저냥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공기는 좋지 못했던 것이다.
현대식으로 생각해 보면, 얼굴도 모르던 일가 친척들이 모여 서로 얼굴을 익히고 술 잔이라도 기울이며 인생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이라고 보면, 제사 시간을 줄이고, 음복 시간을 늘리는 방향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젊은축들의
의견이 타당해 보였지만(물론, 나도 젊은 축 중 가장 젊은 나이였고...), '집안 뼈다구'를 주장하는 노인네들은 아직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월급쟁이 젊은 이들은 주말에나 시간을 낼수있으므로, 음력 10월 첫째 주말로 시사날을 정하자는 주장과
전레대로 반드시 10월 초하루를 고집하는 주장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
날은 참 좋아서, 올 가을들어 가장 좋은 날씨였는데, 새벽길 떠날 때는 추울 정도였던 날씨가,
한낮에는 약간 더울 정도였고, 하늘은 청명하였다.
일찍 찾아온 추위로 온 산에 단풍이 들었는데, 울긋불긋 보기에 좋았고, 고속도로에는 단풍객들의 버스가 줄을 이었다.
생각해 보면, 제사란게 경제적으로는 농업이 기반인 사회의, 정치적으로는 충효가 강조되었던 조선 시대의 풍습인데,
경제에서 농업은 이미 미미해져 버렸고, 더구나 농법 자체가 조상신이 필요없이 되어버린데다가,
정치적으로도 개인주의 민주주의 사회이며,
가장 치명적으로는, 이른바 종교의 자유가 범람하여, 제사 풍습은 심지어 전 근대적 습속이라는 평가까지 있고 보면,
쓸쓸해졌을 조상들이 이제는 영영 잊혀지는 세월들이 오지 않을까.
-----------------------
모든 절차를 마치고 고향 마을을 떠나오면서 이제는 이 땅에 올 날도 얼마남지 않았다는 예감이 문득 들었다.
예전 아버지나 큰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
집안에서 벌어졌던 활극들, 유별났다던 울 할아버지의 여러 기행들(그 분이 집안의 대 장손이어서 그 권력횡포가 대단하였다는데...),
지금 욕심사나워 보이는 고향을 지키는 일가 어른들의 모습에는 그때 울 할아버지에게 당했던 이들의 원망이 녹아들어있다는 느낌,
이제는 그 유난했던 시간들이 먼지처럼 가라앉아 조용히 촌마을 속에서 잊혀지거나,
간혹 기억을 뚫고 나타나 현재 사람들의 감정과 욕망들을 혹은 원망들을 일깨우곤 한다는 것....
'명목상' 집안의 장손인 우리의 사촌 형님은 괜히 책임감을 느끼며 고향 출입을 자주하고 있고,
세상 맘 편한 나는 이제 이 땅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말 그대로 실향민 아니, 무향민의 도시민이 되어 버렸다.
고향 마을 인근에는 유명한 우포늪이 있다.
그기에 오는 길에 고향 마을을 들를 수도 있겠으나, 이미 마을에는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으니, 공연히 올 일도 없어진 것이다.
이 외로운 자손을 돌볼 조상신이 있으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