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담벼락

탄핵의 추억


희귀한 정치적 사건인 탄핵이 처음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노무현 대통령 때다.

우리는 그날의 아픔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노통을 아깝게 보내고 난 뒤에는 더욱 그렇다.

노통을 잃었던 과거사를 새기고 되새기며 우리나라의 역사까지 반추했더랬다.


다음번 탄핵은 우리의 승리의 기억이다.

모든 망한 왕국들이 전형적으로 걸었던 길을 박근혜는 가고 있었는데,

탄핵날 아침에도, 그들은 위기를 모르고 축하 케익을 준비했다니,

인간의 어리석음이 그 지경인 것이었다.

그 자는 어깨가 아프다는 핑계로 최근 탈옥에 성공하고 있는데,

이게 그들 패거리에게 힘을 준 모양이다.


오늘 다시 탄핵을 언급한 자가 있으니,

홍모라는 자가 100만을 광화문 광장에 동원하여 탄핵하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에 개입했다는 취지인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조국 정국이 또 한번 우리 역사의 흐름과 관련된 사건이 될려 하고 있다.

조그맣게 시작하여 걷잡을 수 없는 정도로 사건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검찰 기득권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책동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던 사건이

점점 불씨를 키워 이른바 '보수 대단결'의 고리로 만들어지고,

급기야 박통을 파면했던 것 처럼, 저들도 민중을 동원하여 정당한 대통령을 몰아내자는 주장까지 나왔으니,

조국 대전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아직도 박통의 탄핵을 부정하는 자들은 그때의 탄핵이 마치 쿠테타인 것 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한 발 떨어져서,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면,

그를 대통령 뽑은 것도 나랏사람들 이었고, 파면한 것도 나랏사람들 이란 걸 알 수 있다.


즉, 당장은 정파 간 혹은 정당 간의 정치 투쟁이 보이지만,

좀 떨어져서 보면, 나랏 사람들이 살기위해 혹은 번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어떤 것을

불러내고, 끌어내리고, 소환하며 정치적 변동이 있어 왔다는 것이다.

이건 어떤 정당, 정파라도 거역할 수 없었다. 지금은 매우 어리석게 보이는 이전의 정치적 결론들도,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의식에서 매우 중요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욕구와 욕망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걸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우리 현대사에 적용해 보면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가 왜 극으로 갈리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제일 처음 탄핵이었던 노통의 탄핵이 실패했던 것은,

그가 도입할려고 했던 정치의 민주적 절차, 정치에서의 지방색 없애기 같은 것의 필요성을

나랏사람들이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다음 박통에 대한 탄핵의 성공은 그가 보여준 어처구니 없는 정치 과정에 대한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 때문이었기도 했고,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흉내 내고 있었던

'퇴행적' 정치가 더 이상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는 결단이었던 것이다.


이번의 탄핵 주장은 어떤가?

그 주장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무엇인가를 실현하는데,

탄핵이 필요해야 할 것이다.

(물론, 현 대통령의 법적, 정치적 책임론이 선행되겠지만, 그건 필요 조건 일 뿐이다.)


대체로, 문 대통령의 정치는

남북간의 평화정착, 소주성 정책으로 대표되는 복지정책, 검찰개혁을 필두로 하는 권력 과정의 정상화,

재벌의 구조 개혁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중, 남북 평화정착은 금정 개인적으로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이다.

선대가 물려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모순이 바로 남북간의 대결 구도이기 떄문이다.

이것이 해결되면, 우리는 정쟁의 공포로 부터 해방될 것이고, 

우리의 역량이 흩어지지 않고 세계적 강국으로 줄달음질 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문 대통령을 반대하는 자들은 정권을 잡고 난 후,

어떻게 하겠다는,우리의 진로를 어떤 곳으로 향하겠다는 소리가 일체 없다.

( 처음 나왔던 '천민 사회주의'의 주장은 흘러간 옛 노래, 시대착오적 주장에 불과했다)

오로지 정권 재탈환을 향한 벌거벗은 욕망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저들의 정치 행태를 보면 삭발이니, 단식이니 하는 그야말로 정치 쇼,

아무런 시대적 의미맥락도 없는 정치적 아부, 소란 뿐인 것이다.


일개 장관에 대한 공격에서, 정권에게로,

더 크게는 시대의 흐름을 역전시키고자 하는 세력에 대해, 우리는 어떤 평가와 결정을 내려야 할까?


이런 대의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은 저들이 기득권을 가지고, 재산이 많으며,

마이크를 장악하고, 소란스러워 소리를 크게 낼 수 있다. 이것이 이 쪽의 어려움이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공식 뉴스가 감추는 무수한 사실들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알고, 올바른 평가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으니,

단순히 마이크 크고, 목소리 크다고 이길 수 있는 시대는 아니라, 이번 싸움은 불리하지 않다.


지금부터 내년 4월 까지 이어질 정치의 계절에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여러가지 사항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그 과정들 또한 우리 모두가 우리의 삶에 필요한 어떤 상태를 우리 손으로 만든다 는 원칙 아래에서 결론들이 날 것이다.


이미 선진국이 되어있는 우리나라가 격에 맞는 제도를 확립하고,

평화를 달성하고, 복지도 누리는 삶이 더욱 좋지 않겠는가? 



'담벼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보는 기득권 ?  (0) 2019.10.01
100만 인파의 의미  (0) 2019.09.29
눈치 노트  (0) 2019.09.24
천민 사회주의  (0) 2019.09.22
시끄럽게, 더 치열하게 시끄럽게  (0) 2019.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