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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같은 질문의 반복


한국 정치에서 가장 신선한 형태의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조국에 대한 기자 간담회 말이다.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기자가 '같은 의미의 질문'을 

끝없이 반복하였다는 것이다.

이게 기자들의 수준 때문이라고들 하기도 하고, 별 다른 문제제기가 불가능했던 탓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사실 저 광경은 이른바 공안 정국을 경험한 세대에게는 낯익은 것이다.


즉,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하면서

이미 정해놓은 답을 유도하거나,

이전에 한 같은 질문에 대해 조금이라도 다른 답을 하면,

그걸 빌미로 고문을 한다거나, 거짓으로 몰아 붙였던 공안 경찰, 안기부, 검찰...기타 권력기관이

운동가들을 심문했던 광경인 것이다.


이 장면에서 심문을 당했던 자들은 자신이 이전에 하였던 모든 대답을 기억해야 했다.

그러나 대부분, 고문이나 잠 안재우기, 혹은 긴 시간 때문에 헷갈리고,

이전과는 다른 답을 하게 마련이고,

그 잔인했던 심문의 결과 여러가지 간첩 사건 혹은 공안 사건들이 날조 조작되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제사 그때 그 사건들이 들추어지고, 재심에 의해 무죄로 바뀌고 있다.

이런 곤경에서 제대로 대답하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 기억력이 있거나,

일관된 행동 원칙이 확고하거나 해야 했다.

(이 지점에 생각이 미치자 혹시 그 동안 조국을 향해 몰아쳤던 언론의 광풍같은 뉴스들이 

그때 그 공안 당국의 행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우리가 보는 풍경이 그때처럼 어딘가에 사령부가 있고,

일사불란하게 한 놈만 패는, 때린데 또 때리는

그런 작전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어제 열시간 이상 계속되었던 기자 간담회는 결국 어떤 의미있는 결론도 없어 보이는데,

긴 시간 동안 같은 질문에도 불구하고 후보자의 일관되었던 진술이 돋보였다.

(그렇다고, 그의 진술과 대답이 전부 진실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진술을 들으면서, 지난 시절 우리가 살았던 세월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군사 독재 정권 아래에서의 공안 정국이었던 80년대, 결국 IMF를 초래했던 90년대의 번영,

이후 386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기득권을 쌓기 시작했던 2천년대....

같은 크기로 쌓여왔던 이 사회의 적폐, 모순들..


시대의 파고를 넘고 넘으며 살아왔던 그 세월들.

그 시간 동안 후보자의 삶과, 그 가족들, 그의 부친과 모친..


그가 장관이 되면, 우리나라가 좀 더 합리적 나라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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