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낡은 영화관

24 城都 (24 City 지아장커 2008)

 

1.

 

지아장커는 오즈 야스지로를 철저히 사사하였다.

물론, 중국적으로 재해석 되었고, 그래서 훨씬 활달하고 장쾌하다.

그러나, 졸부처럼 들뜨지 않고, 시선이 안정되었으며, 화면은 무엇인가를 관조하고 있다.

심지어 대사들도 멋있다. 수다스럽지 않은 대사들 사이로 흐르는 시간과 회한과 사랑이 내내 마음을 포근하게도 해주고, 감동을 주기도 한다.

홍루몽에서 가져온 대사들은 화양연화의 찬란했던 기억에 대한 애절한 회상이다.

 

2.

 

중국의 고대도시 청두(成都)를 재발견하게 해 준건 가외의 소득이다.

물론, 나의 뇌리에 있는 그 도시는 유비가 건국했던 촉나라의 서울이라는 이미지가 대부분이지만,

항일 전쟁 때의 부흥과, 전후 내륙 군사기지로서의 발전 또한 내 기억을 형성하고 있다.

영화의 무대인 420 공장지대는 우연히도, 요즘 관심이 지대해진 항공기 만드는 공장이다. 그래서 더욱 흥미가 일었다.

 

항공기를 만들기 위한 인간의 거창한 노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광활한 공장터와 무수한 기계들, 수 없는 부품들, 그리고 사람들....

 

이들이 한 독립된 세계를 이루었던 '420 지대'를 찬찬히 바라보는 이 필름을 통해,

나는 근대 기계문명의 선구자들이나, 중국혁명을 몰고왔던 사상가들이 꿈꾸었을 '행복한' 한 공동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국이니까 가능하기도 했겠지만, 완전히 자급자족이 가능한 한 구역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항공기를 만들어내었던 공동체가 형성되고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꿈이 되어 버리고, 헐리고 뜯겨서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사람에게 찬란한 시간을 만들어 준..하나의 독립된 세계였다.

 

3.

 

240 공장이 헐리고 그곳에는 24 시티라는 호화 아파트가 들어선 것인데...

행복한 공동체의 꿈이 사라지고, 재빠르고 악착같은 자본주의의 시대가 악몽처럼 도래한 것이다.

 

4.

 

우리 시대의 거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지아장커.

그의 필름을 보는 동안 무던히도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