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뉴로멘서, 블래이드 러너, 공각 기동대, 터미네이터, 매트릭스...사이버 세계가 시작된 후 이어진 주옥같은 소설, 영화들이다.
그들의 상상에만 있었던 것들이 현실화 하기도 하고, 혹은 영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초기의 영화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거나,
단지 그림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영상들이 이제는 실사보다 더 생생한 컴터 그래픽으로 화면을 날아다닌다.
2.
이런 사이버 펑크류의 상상을 가만 들여다 보면, 결국 기계 문명에 대한 무한 신뢰와 기대를 배경으로,
그것의 무서운 결말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계 문명에 대한 무한 신뢰란, 기계가 극도로 발달하면, 그것들이 스스로 생식 마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기계가 생식까지도 가능할 것인가?
터미네이터 정도의 상상에서는 생물체와 기계가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바이오 메카닉이 되는데,
이건, 불사의 몸을 상상했던 고대인의 꿈이 현대적 버전으로 표현된 것이다.
3.
공각 기동대에서는 영육 '이원적' 세계관에서,
영혼에 해당될 것 같은 '고스트'라는 존재가 광대한 인터넷 망에서 스스로 생성되어 자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육체를 찾아 떠돈다는 상상인데, 이는 불교적 윤회의 기계론적 변용이랄까?
영화에서는(만화에서도) 육체가 가차없이 망가지지만, 정보를 보존한 '두뇌'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 끊임없이 재생함으로서 영생을 누린다.
이것이 기계에 의해 '가능해진' 윤회가 아닌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두뇌가 신체와 분리하여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이 터무니없고,
영화의 첫 부분에서 묘사되는 일종의 '기계 신경'의 두뇌 결합은 그야말로 순수한 상상이니...
이건 윤회의 현장을 과학적 영상으로 묘사한 첫 장면이지 싶은데... 불교의 윤회 사상이 힌두교에서 유래하였고,
사실, 본래적 불교의 주장에서는 윤회라는 것도 일종의 망상일 뿐인 것이니,
이는, 영육 이원론이라는 낡은 철학의 논리적 한계이리라.
4.
유사 과학적 상상력에서 진짜 과학이 나오는 것일까?
유사 과학적 상상력이란, 근본적인 가정이 잘못되었지만, 언뜻 보기에는 그럴듯한 상상을 말한다.
조금치라도, 실제 과학적 사실을 들이대면, 이야기 전체가 이어없는 망발이 되는 것이다.
가령, 울나라에서 기이하게 히트를 쳤던 '인터 스텔라' 같은 유사 과학적 영화에서,
블랙홀을 통과하는 우주선 이야기가 나오는데, 알려진 사실은 블랙홀 '주변'의 온도가 '1천만'도라는 것이다.
이 온도는 블랙홀 '주변'일 뿐, 블랙홀 자체의 온도 조차 아니라는 것인데...알려진 어떤 '물질'도(분자,원자,아원자,....)
그 온도에서 무사하지 않다는 것이고, 보통말로 표현하면, 분해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모든 물질들은 이온화되어 원자 수준 보다 더 작게 분해되어, 서로 충돌하는 상태가 된다는 것인데...
일종의 영혼적 존재가 된 주인공은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지구로 와서, 책장을 뒤흔드는 '물질적' 작용을 한다는...이 근사한 상상이...
그렇게 크게 히트를 치다니...이건 우리를 둘러쌋던 '우주적 기운'의 힘인 것일까?
5.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절대적 법칙인데,
이 법칙에서 보면, 어떤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스템의 유지 그 자체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므로...
그러므로, 인터넷을 하나의 체제라고 생각한다면, 그 '계'에 끊임없는 에너지가 공급되어야 유지될 수 있으며,
망에서 '자연 발생'한 고스트라는 존재도, 우리가 밥을 먹듯이 어딘가에서 계속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한다는 것이 물리법칙이다.
(이 장면에서 떠오르는 영화가 봉 준호의 '설국 열차'다...
그 열차의 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영화에서 묘사되는 기간이 상당히 길어 보이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그 열차는 종말을 향해 달리는 인간의 운명을 은유하는직선을 따라가는 인간의 운명 혹은 종말...
결국 종말론에 관한 이야기로 해석되어야 하는 걸로 보이는데...
또, 영화의 말미에서 열차로 부터 뛰어 내리는 '벌판' 이라는게, 그 열차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 넓은 벌판을 두고 좁은 열차에서 뭐 그렇게 심각하게...)
정보 그 자체가 망 사이를 끝없이 떠돌며 존재할 수 있을까?
윤회 사상에선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에너지 공급 방법이 개발되지 않는 한...
6.
만화적 상상이라는게 이른바 'B급'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데,
일본에서 사이버 펑크는 변용된 천황주의의 색체가 짙다(심지어,하야오의 아동 만화에서도 그런게 보인다.).
영미에서는 기독교의 종말론적 생각이 기반이다.
변용된 천황주의란, 섬나라 일본은 고립된 연구실 혹은 일부 '숨어있는' 부서로 은유되고,
그 일부 부서가 전체를 구하는 정의를 실천한다는 생각은 모든 이의 부모로서의 천황이라는 생각과 연결되는듯 보이는데,
그 수하의 실행자들은 거의 사무라이의 무사도를 수행하는듯한 생각과 행동을 보여준다.
물론, 만화의 세계에서 사무라이의 행동방식이 깔끔하고 멋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의 잔혹성과 야만성은 세탁된다.
(이점에서, 이런 사고방식이 B급으로 격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재미가 없어지므로,
결국 그들은 B급일 수 밖에 없다)
미시마에 의해 결행되었던 최후의 할복으로부터 무언가 교훈을 얻지 못한 자들은 아직도 최후의 전쟁을 상상하고 있다.
(미시마가 문학에서의 약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희극적인 할복은 당대 일본인에게, '황당한' 충격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일부는 '아직도' 그의 장렬함을 흉내낼려고 하고 있지만...)
지금 일본의 정치를 바라보면, 분명 이런 생각들이 보인다.
특히 권력 유지에 눈이 먼 '아베'라는 자의 행동에는, 자신의 야망을 국익으로 능숙히 포장해온
100년 전통의 일본 우익 정치의 기술이 들어있고, 그 기술의 최고봉은 천황주의라는 유사 종교적 정치이념이다.
7.
그러므로, 공각 기동대의 상상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에서의 상상과는 또 다른 버전의 기계론적 상상으로서
마이너리티에서 기계는 결국, 인간의 탐욕이 과정에 개입하여 실패로 끝나며, 그것을 통해 기계 자체의 '공허'를 보여 주었는데,
공각 기동대에서의 기계는 일종의 열반에 이르게 되며, 그것은 인간이라는 생물종을 넘어서는, 기계의 초월 혹은 해탈을 보여준다.
이 모든 상상을 둘러 싼 더 큰 인간적 상황이란,
개인을 꼼짝도 못하게 옭아매고 있는 촘촘한 사회의 모습과 대항력이 전혀 없는 개인이라는 상황을 은유하는 것이 아닌가?
이 상황은 전혀 불가항력이라는 허무한 결론이 공각 기동대의 전제가 아닌가?
8.
서구인이 해석한 일본 만화는 역시나 동양의 윤회사상에 대한 이해가 만화의 핵심이란 사실을 좀 간과한듯 하다.
주인공의 고뇌란 결국 고스트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이며, 그것이 지금의 현실과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것인데,
이건 전생과 현생의 관계라는 동양의 알레고리인데, 서양인이 이를 이해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그들은 인생이란게 그저 종말로 향해 달려가는 기차이므로)
그리하여, 화려한 영상에도 불구하고, 뭔가 싱겁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동양에서 윤회에 대한 생각은 정치체제을 떠받치는 한 축으로서 심각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공각 기동대 만화는 전편에 걸쳐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의 의문을 제기한다. 이게 심지어 심오한 우주론적 철학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그렇지 않으므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 조차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싱겁다는 느낌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오는데...
그래서,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된 것인데, 그 영화의 욕망이 동서양을 다 잡을려는 것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정쩡한 스텐스로 곤욕을 겪고 있는 현제 대선에서의 한 후보와 비슷한 모습이다.
세월이 날로 부패하니, 영화들은 날로 초월적,환상적,반동적으로 되고 있다.
공각기동대라니....세상이 이토록 썩어버린 것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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