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이라 치고 난 후에도, 영화의 이념이 머리 속을 계속 헤집었다. 뭔가 찜찜했던 것이다.
1.
그 느낌은, 소위 진보진영에서 질색하는 '신 자유주의'와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이 영화에서 정부를 의심하는 주인공이나, 한은의 그 조사역이나
그때 그 국가 체제에 반대 의견을 냈다는 면에서는 어쩌면 진보 혹은 좌파 진영의 주장과 동일하다는 외형을 가지지만,
한편, 그들의 나중 행보는 영락없는 신 자유주의자였기 때문에,
도데체 이 영화의 주장 혹은 정체가 뭔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2.
오랜 옛날에는(거의 30여년 전 쯤...그리먼 과거가 아님에도, 요즈음은 그 시절 이야기가 마치 원시 시대 혹은 신석기 시대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저 정부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하면 우리 편이라고들 생각했다.
그때는 인터넷도, 스마트 폰도 없는 시절이라(이게 상상이 되는가..?ㅎㅎ)
그저 찌라시나 소문 정도가 돌아다니고 있어, 우리 편이 누군지 가리는 기준은 그저 같은 말을 하는 자라는
소박한 관념 뿐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대로, 아니, 지금 우리 정치판을 뒤흔드는 자들에서 보듯,
'가짜' 우리 편이 위장색을 훌륭히 칠하고 우리 진영에 잠입하여,
우리를 분열시키고 대립시키고 적대시키는 공작을 만든다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정체도 신 자유주의라는, 맨낯 그대로의 '무정한' 자본주의,
그 본체는 자본주의 종주국의 금융 자본의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는 바로 그 빠찡코 자본주의자들을
반대하는듯 하며 우리의 호감을 사고 난 뒤,
다시 은밀히 신자유주의의 정당성 내지 화려함을 선전하여, 우리 모두를 그 이념에 저항하지 않고, 환영하도록 하는
간자 혹은 세작, 스파이, 에스피오나지가 아닌가?
3.
이런 의심으로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이 머리속에 계속 머물렀는데...과연 이 의심은 근거가 있는 것일까?
여주인공은 영화의 처음부터 분노하는 표정이었고, 대사는 항상 하이톤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왜 항상 화가 나있었을까?
그녀의 그런 태도는 이른바 '후견 확증편향' 즉, 그때 그 사건을 이미 경험한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
다시 그 사건 '전으로' 돌아가, 그 사건을 예견, 대비하지 못했던 어리석었던 과거의 그 자들을 향해 일갈하는
바로 그런 태도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녀의 화는 근거가 없는 것이며, 일종의 속임수다.
지금의 우리는 당시 사태가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 다 알고, 보았으니,
그 거대한 사건에 대처하지 못하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 높은 자들에게 화는 내는건 당연해 보이는 것이다. 영화는 이런 심리는 표현하고있다.
그러나 이건 부당한 태도이며, 오히려 그때 그 시점에서 모을 수 있었던 모든 정보를 토대로 그 후 사건의 추이를
예측하거나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인가 하는 면을 반추하는게 솔직하고, 정당한 자세다.
지난 과거에 대해 후견 확증적 태도를 취하며 욕하고 화를 낸다는 것은,
우리에게 앞으로 다가올 사태에 대해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인데, 과연 이게 가능한가?
모든 현재는 재빨리 과거가 되고,
우리의 미래도 이윽고 현재를 지나 과거가 되니, 과거의 잘못을 심하게 비난하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는가..
과거 그때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곧 지금 나의 어리석음이 아닌가?
그녀의 화난 모습은 다시, 같은 혹은 유사한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인 것만 같다.
또, 선견지명으로 돈을 번 것으로 묘사되는 남자 주인공은 어떤가..?
당시 대한민국의 테두리 내에서 모을 수 있는 모든 자료들, 통계들, 정치, 사회, 문화....등등의 모든 자료를 모았다 하더라도,
알 수 있었을 것은 당시 대한민국의 성장율이 상당하였으며,
무역수지가 무척 좋았고, 사람들의 생활은 활기차고 명랑했다는 사실들일 것이다(가장 평범한 내가 바로 그렇게 살았으니까...)
기업 하나 혹은 재벌 하나가 부도난다고 해서, 또 대형 정치적 부정부패 스캔들이 았다고 해서
그게 나라의 부도로 이어질거라는 생각을 누가 할 수 있으며,
그것이 빌미가 되어 엄청난 부실자산이 발생되고, 그걸 처분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이 생기리라는 상상을 누가 할 수 있을 것인가?
한가지 가능성은,
우리나라의 테두리가 아니라, 국제적 규모에서, 혹은 음모론적 세력의 견지에서 보면,
그런 금융 위기 혹은 통화 위기는 선진국 진영에서는 다반사로 발생했던 자본주의의 '조정 과정'이며,
그 조정 과정의 경과와 해결책들을 이미 여러번 경험한 선진 자본국의 투기 세력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당시 우리의 부도가 외국인에게 무척 충격적이었다는 것이다.
기술이 상당하고, 수출액이 세계 10위 정도이며, 해마다 무역 흑자를 기록한 나라가 갑자기 부도 선언을 한다는 사실은
외국인에게 무척 충격적이었다는 것이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 강력한 나라는 어떻게 흔들어, 어떻게 빼먹을 상상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누가..?
( 이 영화에서는 미국 정부 그자체에 혐의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벌어진 상황을 이용한 것이지, 원인을 만들고,상황을 만든 건 아니다. 그건 우리다.)
그 전해에 러시아의 부도 선언이 있었고, 여파로 남미, 동남아 나라의 통화위기가 진행되고 있기는 했지만,
울나라의 경제가 부도나리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모든 제도는 그때까지의 우리 역사에 꼭 맞는 자료, 통계, 생각들..만을 알 수 있었을 뿐이므로,
대한민국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지 않는 한, 사건의 미래를 절대 예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있었던 자료로, 미래를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것도 후견 확증 편향이다.
시대의 어리석음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때 대한민국이 반드시 그 비극적인 코스로 달려 가리라고 정확히 예측 혹은 예견할 수 있었던 자가 있었겠는가?
우연히, 당시 금융기관의 탐욕 때문에,
일시적으로 현금이 부족했던게 소위 부도 사태의 진상이니, 이런 일이야 다반사로 있는 일이 아닌가...
물론, 나라 단위에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도록 대비해야 할 일이지만,
당시의 관념으로는 그게 나라의 부도로 까지 갈거라는 상상은 불가능했지 않았을까..?(바로 그 생각 때문에 부도가 나긴 했지만 말이다...)
내국인들은 역사상 처음 혹은 일생에 처음 겪는 일이라 다음 상황이 너무나 무서웠으니,
결국 사람들은 나라가 망했던 경험 즉 일제 때의 기억을 되살리게 되었고,
개인의 운명 혹은 치부 보다는 나라를 살리자는--즉 금 모으기 운동이라는-- 최후의 국가주의적 대중 운동이
엄청난 호응을 받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최후에 기댈 곳은 우리가 함께 사는 나라라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오히려, 그 순진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역이용하여 치부했던 자들이 '국제적'으로 무역하던 무역상사들이었다.
그 다음, 이 땅의 우량 기업 주식을 매점했던 신자유주의적 외국자본들과 그 하수인들,
재무부를 통해 외국 자본을 중계하며 막대한 구전을 먹었던 자들...
우리의 부도를 틈 타 우리 나라 주식을 대량으로 삿던 외국인들은 주인공이 믿지 못했던 우리나라를 믿었던 것인데,
그로 인해 막대한 시세 차익을 얻었다.
그 차익이 너무 커서, 그 결과만 바라보면 이것들이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지 않았는가 하는 혐오와 질시가 생길 정도다.
그러나, 그 사건의 진짜 원인(우리 내부의 허술함, 혹은 운용상의 미숙함 혹은 탐욕 혹은 기타등등..
이런 요인들은 사람 사는 곳에는 다 있는 것들이다...)을 반성해 보면,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여기는게 맞는 태도다.
이렇게 보면, 남자 주인공은 '거의' 외국 자본가인 것이다.
나중에, 사태가 한참 진행되고, 부실 자산이 정리되던 시기에(1998년과 1999년의 무려 2년 동안)
폭락한 가격의 자산이 홍수를 이루었고, 그때 과감한 베팅을 했던 내국인들은 나중에 부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때조차 많은 사람들은 망설였고, 미심쩍어 했으며,
오히려 지금 가진거나 지키자는 생각만 하였다(공포 때문에...).
오히려 지금 반성할 점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의심하기 보다는,
우리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희망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그걸, 외국인은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그리고 현실화 된 것은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비관적이었고,
외국인이 알아본 우리의 저력이 대단하였다는 것이다. 시장은 적절한 예측에 대해 보상을 해 주지 않는가...
4.
이런 생각들 끝에, 이 영화는 신 자유주의를 은연 중에 선전하고 계몽하는 것 일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
돈 마니 버는게 최고라는...조심해야지 않을까?
자본주의라 해서 꼭 그렇게 비정하거나, 혈연만 신경쓰거나 하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과거와 현재의 우리 모습은 그런 것인데, 이건 반성해야 한다)
지금 이 시대, 마치 새로운 위기가 다가 오고 있다는듯한 정치판을 살피면, 우리의 전망을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내부 식민지로서의 북한과, 우리의 내수 시장으로서의 중국과 러시아라는 찬란한 환상이 내년 이후에 실현될 것인가?
우리 내부의 능력이 그것을 어떻게 돌파,실현할 것인가?
첨단 기술에 의한 제 4차 혁명이라는-- IT, BT, 우주항공--들의 기술 개발은 열매를 맺을 것인가...
그것들이 어떤 코스를 지나 어떻게 미래를 만들 것인가..
자본주의 수업시간이 진행되고 있다.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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