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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영화관

국가 부도의 날(최 국희 2018) 2.


이전 글을 다 쓰고 나서, 다시 머리 속에 돌아다니는 생각들을 정리해야 했다.


1.

그때 그 사건을 '국가 부도'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레버리지 경영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는 측면에서, 그 전까지의 국가가 부도났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의 대다수가 자신을 중산층이라 여기던 시절이었고,

실제로도 사람들 호주머니에는 돈들이 있었고, 경제도 재빨리 제 궤도를 회복하였으니,

나라가 완전히 거덜이 나버렸다는 의미의 국가 부도는 아니었다.


그 후 울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산층이라 여기던 국민들의 호주머니가

20여년이 지나면서 점차 비어가기 시작하였고, 나라 경제의 외형은 엄청나게 성장하고, 재벌들은 글로벌한 부자가 되었지만,

그걸 위해 열씨미 일한 사람들은 가난해졌다.

이젠 사람들이 아파트 한 채 가지는게 일생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이렇다면 부도는 언제 난 것인가?


국가 부도의 날은 1997년의 그 날이 아니라,

그 후 어느 날엔가...비정규직이라는 제도가 노동 제도가 된 날이거나, 중소기업 고유업종의 규제가 없어지며 재벌들이 골목으로 처들어온 어느 날이거나,

노동 유연화라는 명목으로 사람을 함부로 자를 수 있는 법이 만들어진 어느 날...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주머니가 털리며, 장기적으로 가난뱅이로 추락한 세월들 중 어느 날이어야 한다.


2.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또 의심해라

는 메시지에는 하나의 역설이 숨어있는데, 그가 만일 끝까지 그런 태도를 유지한다면, 아무런 거래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그가 어떤 자산을 산다면, '차후' 그 가격이 올라가리라는 확신을 가진다는 것이고,

판다면, 그 반대의 확신을 가진 후라야 된다는 것이니,

그는 어디까지 의심하고, 그 이후부터는 확신을 할 것인가?


라는 심각한 논리적 역설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의 그 확신은 어떤 것을 근거로 하는 것일까?  그는 어느 싯점에서 의심을 멈추고 거래를 성사시킬 것인가?


바로 이 점이야말로 투기꾼에게 가장 난해한 문제이며, 이 문을 열고 들어갈 수만 있다면 부자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단기적으로 시장을 조작하여 이익을 취할 수 있는 힘센 자들의 유혹이 시작되며, 실제로도 나타난다.

아무쪼록 시장에서 그들을 만나지 않아야 한다.

하여간, 무언가 사서 이익을 남기려는 자는 지가 사고 난 뒤 반드시 오를 것을 예측하거나 확신해야 하는데,

그게 과연 실현될 것인가?


이 영화에서 유아인은 울나라 자산들을 사서 치부하였으니,

이는 반드시 울나라가 나중에 좋아질거라는 확신을 가졌어야 하는 것인데, 영화에서 표현되듯이 이 나라의 모든 것

특히 정부의 발표 내용을 아뭇것도 믿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나중에 좋아질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매매가 '원-웨이' 밖에 허용되지 않는(매수만 가능하다...공매도는 개인이 할 수 없다.)

울나라에서는 나중에 나아지지 못하고 그 사건 이후 결국 제 3세계의 후진국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면,

절대로 대한 민국의 자산을 사서는 않되는 것이다. 그때 그 엄중한 IMF 시절에 누가 그런 믿음을 대한민국에 대해 가질 수 있었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해보면, 의심 만으로는 아뭇것도 할 수 없을 가능성이 있으며,

오히려 그 엄중한 위기 중에서도 믿을 구석을 찾아다녀야 한다.

다행히, 울나라는 나라의 전체적 역량으로 다시 선진국 코스로 재진입에 성공하였지만,

그걸 확신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투기에 쏟기에는 당시 상황은 너무 공포스러웠지 않은가...


3.


그때 그 사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면, 결국 기업들이 재무적으로 굉장히 개선되었고(즉, 자기 돈으로 사업하기 시작하였고),

나라 전체는 본격적 자본주의의 길로 접어든 순간이었다는 소감이다.


이전까지의 독재적 정치 상황에서는(특히 금융계는) 정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외형 만 중시하였는데,

이제는 그것이 안 통하는 객관적 상황이 된 것이다.

즉,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시대가 된 것이다.

그 전 우리끼리의 리그로 부터 외국인이 끼어들어 국제적 기준을 어느 정도는 지켜야 만 하는 상황변화가 온 것이다.

(이 부분에서, 국수적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은 외국 자본의 공격에 대해 걱정한다.

그러나 냉정히 보면, 자본의 국적은 별 중요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

우리의 경우, 오히려 국내 자본이 더욱 악랄하며, 탈세를 저지르고도 멀쩡하지 않은가 말이다.

아무리 뻔뻔한 외국인이라도 남의 나라에서 그런 행동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니,

오히려 그때 개방한 김에 적대적 인수합병까지 허용했다면, 울나라가 어찌 되었을까?).


4.


어떤 용감하지만,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이 호랑이 수염을 뽑아다 이쑤시게로 쓸 작정을 하고 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 자손까지...


5.


영화를 계기로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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