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만필 西浦漫筆
말로만 듣던 고전 김만중의 서포만필을 읽는다.
3백년도 더 전에 살았던
서포 선생의 글이 아직 흥미로운걸 보면, 고전임에 틀림없다.
제1 권 전반부는 주로
중국의 유명한 역사적 사건에 등장하는 영웅들에 대한 인물평이다.
그 인물님들 중 초패왕 항우와 그를 이겼던 유방에 관한 대목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대통령 선거 상황과 너무나 흡사한 서술이 나와 감탄하였다.
항우가 패하고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한 것은
이미 기정의 역사적 사실이지만, 아직 그때 왜 그리 되었는지는 다 알지는 못한다.
그 사건에 대해 그로부터 천년이 흐른 어느 때 어느 인사가 한시를 지었는데,
그 시 중
강강필사인의왕
剛强必死仁義王
이라는 구절이 있었다.
이 구절에 눈이 자꾸 갔고, 생각에 잠기었다.
이 구절이 말하는 것은, 유방이 인의의 왕이었고,
반면 항우는 강강하다가 필사한 영웅이라는 것이다.
항우가 강강했다는 것은 그의 절명시
역발산 기개세에서 이미 자술하고 있으니 다 아는 일이지만,
유방의 인의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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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가 전국시대의 대전란을 종식하고 천하를 통일하고 난 뒤,
세상에는 진나라의 법이 강제되었다.
통일 전 이미 몇 백년 동안, 진나라에 통용되었던 법가의 법은
진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었으나, 가혹하기 이를데 없었으니,
종국에는 그 법을 만들었던 이사 조차 자신의 법으로 처단될 정도였다.
유방도 진나라의 죄수로서 도망하여 산적으로 몇 년 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방이 세상에 나오고 발표한 것이 이른바
약법삼장約法三章이다.
[역사] 중국 한(漢)나라 고조가 진(秦)나라를 멸한 후 셴양(咸陽) 지방의 유력자들에게 약속한 3조(三條)의 법.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남을 상해하거나 절도한 자는 벌하며,
그 밖의 진(秦)의 모든 법은 폐한다는 것이다.
(다음 국어사전에서)
여기서 마지막 구절 즉, 진나라의 모든 법을 폐한다는 그 약속 속에
유방의 인의가 들어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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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는 귀족출신의 귀공자로, 용력과 전략이 출중하고,
그를 따르는 강남의 8000 자제가 있었던 영웅이었다.
그의 정치 혹은 전쟁은 오로지 왕권의 탈취에 있지 않았을까?
반면, 유방의 전쟁은
진나라 법에 의해 생사를 헤메야만 했을 수억의 생민들을 도탄에서 구하고자 하였으니,
저 약법 삼장같은 선언이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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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선이라는 경쟁에서,
두 주인공은 각각 누구에 해당되는가?
누구 강강한 자인가? 누가 권력기관의 힘으로, 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괴롭히고 누르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려 하고 있는가? 세상에 대한 아무런 계획이나 애정도 없이 말이다.
누가 오로지 대통령 자리만을 목표로 하여 정치를 하고 있는가?
반면, 누가 생민의 아픔에 공감하며, 미래에 대한 정책을 이야기하여,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는가?
강강필사라...힘으로 왈기고, 사람을 무섭게 을러대는 자는 필히 사망에 이를거라는 저 구절은
어쩌면 예언으로 들린다.
사람에게 친절하고 인자하고 의로운 자 만이 최고의 자리에 답할 수 있는 것이다.
서포만필에서 건진 한 구절이다.